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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타임 스터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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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타임 스터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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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장과 적그리스도의 큰 흐름

요한계시록 6장의 네 말, 다니엘 9장의 한 이레, 스가랴 14장의 재림 장면을 연결해 적그리스도와 마지막 시대를 성경의 큰 이야기 흐름 안에서 정리합니다.

  • 요한계시록 6장의 네 말과 첫 봉인
  • 다니엘 9장의 7년 언약과 중간 배신
  • 재림하시는 왕 예수님과 실제적 순종

에세이

마지막 시대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람을 겁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큰 흐름을 알고, 그 흐름 속에서 지금 내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만 따로 떼어 읽지 않고, 요한계시록 6장, 다니엘서, 마태복음 24장, 스가랴 14장을 하나의 뼈대로 엮어야 합니다.

출발점은 요한계시록 6장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구조 안에서 첫 번째 일곱, 곧 일곱 봉인은 마지막 시대의 무대가 어떻게 열리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을 한 번 듣고 넘길 것이 아니라, 다시 복습하고 자기 노트로 정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림은 조각난 정보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반복해서 그려주는 큰 이야기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흰 말은 겉으로는 좋아 보입니다. 흰색은 승리와 평화를 떠올리게 하고, 말 탄 자가 면류관을 받고 나가 이기고 또 이긴다는 표현도 강한 승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활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활은 가까이서 직접 싸우는 칼과 다르게, 멀리서도 차지하고 정복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노골적인 폭력의 얼굴로만 등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평화, 질서, 승리의 이미지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흐름은 곧 돌변합니다. 흰 말 뒤에 붉은 말이 나오고, 붉은 말은 땅에서 화평이 사라지고 서로 죽이는 전쟁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검은 말은 저울을 들고 등장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물자가 줄고, 먹고사는 문제가 무거워지고, 재물과 금붙이보다 실제 먹을 것이 더 절박해집니다. 청황색 말은 그 흐름이 더 깊어져 죽음과 흉년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은 따로 떨어진 네 장면이 아니라 정복, 전쟁, 결핍, 죽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입니다.

여기서 첫 봉인들과 뒤의 나팔 심판, 대접 심판을 구분해야 합니다. 나팔과 대접은 하늘에서 직접 내려지는 심판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첫 봉인들은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가 땅에서 일으키는 역사적 재난의 성격이 강합니다. 청황색 말에서 땅의 4분의 1이 죽는 장면도, 뒤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심판과는 결이 다릅니다. 말 탄 자가 권세를 받아 죽이는 흐름이라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이 흐름은 다니엘서와 연결됩니다. 다니엘서의 신상 환상과 제국들의 흐름을 보면, 역사 속 제국들은 점점 더 강한 권력과 더 넓은 정복을 향해 나아갑니다. 알렉산더 같은 정복자의 시대가 지나면 더 큰 제국이 등장하고, 또 그 다음에는 더 강한 권력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적그리스도는 이런 제국적 욕망의 최종 형태처럼 나타납니다. 갑자기 아무 맥락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큰 줄기 안에서 이해해야 할 존재입니다.

다니엘 9장 27절은 7년 대환란의 중요한 근거로 다루어야 합니다. 한 이레, 곧 7년 동안 언약을 굳게 맺는 장면이 나오고, 그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구분이 나옵니다. 적그리스도는 처음에는 언약을 맺고 평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간에 배신하고 제사를 멈추게 하며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성전과 제사 문제도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이 세 번째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로운 종교 뉴스로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성전 자리,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곳,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모리아 산의 자리는 지금도 매우 민감한 분쟁의 중심입니다. 그 자리에 성전이 세워지고 제사가 다시 드려진다면, 그것은 성경 예언의 흐름 속에서 매우 큰 신호가 됩니다.

동시에 제사가 다시 드려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오셨고, 참된 제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는데도 다시 성전을 짓고 제사를 드린다면, 예수님을 거부한 상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완악함으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찌른 이를 보고 통곡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그 회개는 예수님의 재림과 깊이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적그리스도의 손아귀에 붙잡힌 이스라엘을 구출하시는 장면은 성경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구약에서 사사와 구원자들이 포로 된 백성을 구출하는 장면들은 결국 완전한 왕이신 예수님을 향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잠깐 방문하고 돌아가시는 분이 아니라, 왕으로 오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예루살렘에 영광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분입니다.

스가랴 14장도 이 그림을 더 선명하게 합니다. 주님이 감람산에 서실 때 산이 갈라지고 골짜기가 생기는 장면은 단순한 상징만이 아니라, 도망하고 구원받는 백성의 그림과 연결됩니다. 적그리스도에게서 도망하는 길이 열리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는 장면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시대 그림은 하늘에서 누군가 잠깐 나타나는 장면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으로 왕이 들어오시는 장면입니다.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는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장악한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에돔, 모압,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지역은 오늘날 요르단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가 끝까지 어떻게 쓰임받을지는 우리가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든 A국이든, 정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땅에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는 백성이 있는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맷돌 비유도 이 적용과 연결됩니다. 둘이 같은 자리에서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받고 하나는 남습니다. 겉으로는 둘 다 같은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사역의 외형이 아닙니다. 사역자라는 이름이 있어도 자기 뜻대로 버티고 은사를 마음대로 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평범한 자리에서 일상을 살더라도, 삶의 전반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순히 따라가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입니다.

마지막 적용은 아주 실제적입니다. 분노, 짜증, 미움, 상처처럼 우리 안에서 불쑥 올라오는 자아를 붙들고 있으면 순종이 어려워집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마음이 상해서 떠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아는 사람은 예언을 분석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고, 올라오는 자아를 처리하며, 실제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방향은 두려움이 아니라 순종과 기도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마지막 시대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드라마처럼 펼쳐질 정도로 이해하고, 그 그림 앞에서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공동체를 축복하고, 한국과 A국 같은 나라들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쓰임받도록 기도하는 태도가 이 공부의 결론입니다.

내용 정리

1. 마지막 시대 공부의 뼈대

요한계시록 6장, 다니엘서, 마태복음 24장, 스가랴 14장을 마지막 시대 공부의 기본 뼈대로 삼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일곱 봉인, 다니엘서는 적그리스도와 제국의 흐름,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마지막 시대의 경고, 스가랴 14장은 주님의 날과 재림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본문들은 따로따로 암기하는 자료가 아닙니다. 반복해서 복습하고, 머릿속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사건들은 조각난 정보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큰 이야기 흐름 안에 있습니다.

2. 요한계시록 6장과 첫 번째 흰 말

첫 번째 흰 말은 적그리스도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흰 말은 겉으로는 좋은 이미지입니다. 승리와 평화, 질서와 안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말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은 직접 맞붙어 싸우는 칼과 다르게, 멀리서도 이기고 차지하는 방식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노골적인 폭력의 얼굴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승리의 이미지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장악할 수 있습니다.

3.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의 흐름

붉은 말은 땅에서 화평이 사라지고 서로 죽이는 전쟁을 보여줍니다. 검은 말은 전쟁 이후 물자가 줄고, 저울로 양식을 재는 결핍과 물가 상승의 시대를 보여줍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금붙이보다 실제 먹을 것이 더 절박해집니다.

청황색 말은 그 흐름이 더 깊어져 죽음과 흉년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정복, 전쟁, 결핍, 죽음은 각각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재난으로 이어집니다.

4. 첫 일곱 봉인과 나팔·대접 심판의 차이

첫 일곱 봉인과 뒤의 나팔 심판, 대접 심판은 성격이 다릅니다. 나팔과 대접은 하늘에서 직접 내려지는 심판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첫 봉인들은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활동, 그리고 그가 땅에서 일으키는 재난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청황색 말에서 땅의 4분의 1이 죽는 장면도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이라기보다, 말 탄 자가 권세를 얻어 죽이는 흐름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첫 봉인은 마지막 시대의 무대가 어떻게 열리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5. 다니엘서와 적그리스도의 세계 제국

다니엘서는 마지막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책입니다. 다니엘의 신상 환상과 제국들의 흐름은 역사 속 권력이 점점 더 강한 정복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더 같은 정복자 이후에도 더 큰 제국, 더 강한 권력이 계속 등장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적그리스도는 이런 제국적 욕망의 최종 형태처럼 나타납니다. 다니엘서의 흐름을 모르면 요한계시록의 그림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6. 다니엘 9장의 한 이레와 중간 배신

다니엘 9장 27절은 7년 대환란의 중요한 근거입니다. 한 이레, 곧 7년 동안 언약을 굳게 맺는 장면이 나오고, 그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구분이 나옵니다. 적그리스도는 처음에는 언약과 평화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간에 배신하고 제사를 멈추게 하며 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7. 성전산, 모리아 산, 세 번째 성전

유대인들이 세 번째 성전을 준비하는 문제는 마지막 시대의 중요한 지점입니다. 성전을 세우고 싶어 하는 자리는 예루살렘 성전 자리이며,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곳이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모리아 산과 연결됩니다.

그 자리는 지금도 매우 민감한 분쟁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다시 세워지고 제사가 드려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종교 뉴스가 아니라 다니엘 9장의 흐름과 연결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8. 성전 제사와 이스라엘의 완악함

제사가 다시 드려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제사가 완성되었는데도 다시 성전 제사를 붙드는 것은, 예수님을 거부한 상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완악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결국 자신들이 찌른 이를 보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장면을 말합니다. 그 회복은 예수님의 재림과 깊이 연결됩니다.

9. 재림하시는 왕 예수님

예수님의 재림은 단순히 하늘에서 잠깐 내려오시는 장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고, 적그리스도의 손아귀에 붙잡힌 이스라엘을 구출하십니다.

구약의 사사와 구원자들이 포로 된 백성을 구출하는 장면들은 완전한 왕이신 예수님을 향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영광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분입니다.

10. 스가랴 14장과 감람산

스가랴 14장은 주님이 감람산에 서실 때 산이 갈라지고 골짜기가 생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골짜기는 도망하고 구원받는 백성의 그림과 연결됩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적그리스도를 부수시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십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림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실제 역사 속으로 왕이 들어오시는 장면입니다.

11. 나라의 운명과 하나님의 백성

특정 나라의 미래를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전 세계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장악한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에돔, 모압, 암몬 자손의 지도자들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는 장면도 나오며, 이 지역은 오늘날 요르단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든 A국이든 어떤 나라가 마지막 시대에 어떻게 쓰임받을지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땅에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은 겉으로 화려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12. 마지막 시대를 아는 사람의 실제적 순종

마태복음 24장의 맷돌 비유처럼, 겉으로는 같은 일상을 살아도 하나님 앞의 상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역자라는 이름이 있어도 자기 뜻대로 살 수 있고, 평범한 자리에서도 깊이 순종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아는 것은 예언 지식이 많아지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분노, 짜증, 미움, 상처가 올라올 때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가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를 공부하는 사람은 더 많이 분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루고 더 깊이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3. 결론: 두려움보다 기도

결론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림을 알고, 성경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현재의 삶을 순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축복하고,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고, 한국과 A국 같은 땅들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쓰임받기를 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지식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정보가 아니라, 더 깨어 기도하게 하는 초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