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두 가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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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소금은 심판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소금은 음식을 영원히 붙들어 두지 못합니다. 아무리 잘 절여도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는 상합니다. 그래도 소금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썩는 속도를 늦춥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녹아 사라진 뒤에도 제 일을 합니다.

강의 마지막에 이 비유를 꺼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우리가 세상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사람은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기도하고 바르게 살면 썩는 속도가 늦어집니다. 한 사람이 더 돌아올 시간이 생깁니다.

종말을 공부하다 보면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무슨 사건이 먼저 일어나는지, 두 증인은 누구인지, 전 삼 년 반과 후 삼 년 반은 어떻게 나뉘는지 알고 싶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징조를 살피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종말은 흥미로운 시간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구원이 완성되는 날인 동시에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세상의 부패를 재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보다 사건의 진행에 더 사로잡힌 셈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는 짐승과 큰 음녀로 그려진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강의에서는 이 둘을 인간 사회가 오래 반복해 온 두 타락의 모습으로 읽었습니다. 짐승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려 합니다. 바벨론은 모든 것에 값을 매깁니다. 한쪽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명령하고, 다른 쪽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몰리면 처음에는 일이 빨리 풀리는 듯 보입니다. 결정은 간단해지고 반대 목소리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절대 권력을 견딜 수 없습니다. 자신을 막을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선한 뜻마저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짐승의 끝에는 섬김이 아니라 숭배의 강요가 있습니다. 다른 목소리를 없애고 자기만 높이는 권력입니다.

권력을 흩어 놓는다고 문제가 모두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의 바벨론에서는 금과 보석과 향품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영혼까지 거래 목록에 오릅니다. 시장은 권력을 나누고 사람에게 선택할 자리를 열어 줍니다. 그러나 욕망을 제어할 길이 사라지면 선택은 곧 상품이 되고, 사람마저 이익을 위한 재료가 됩니다. 자유가 탐욕을 막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역사는 자주 양쪽을 오갑니다. 권력이 썩으면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시장이 사람을 삼키면 정부의 통제를 찾습니다. 어느 쪽도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건강한 정부도 필요하고 건강한 시장도 필요합니다. 다만 어느 제도도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권력이 우상이 되고, 욕망에 모든 것을 맡기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인간이 만든 질서는 죄를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어도 죄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짐승과 큰 음녀는 처음에는 서로를 이용합니다. 음녀는 짐승을 타고, 짐승은 음녀가 가진 힘을 빌립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고 불살라 버립니다. 악은 오래 충성하지 않습니다. 욕망으로 맺은 동맹은 더 큰 권력이 나타나는 순간 깨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평화는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동안만 평화인 경우가 많습니다.

강의에서는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도 함께 살폈습니다.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 모세를 닮은 재앙과 엘리야를 닮은 권능을 생각하면 두 증인을 이 두 사람으로 보는 해석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모세와 엘리야일 수도 있고, 그들과 같은 선지자적 사명을 받은 두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닫아 둔 문을 억지로 열어 놓지 않는 것도 믿음입니다.

두 증인의 이름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심판이 닥치기 전에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세상이 망하는 모습을 기다리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돌아오라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제국 앞에 섰고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 앞에 섰듯, 두 증인도 권력과 우상숭배 앞에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심판을 말하는 까닭은 사람을 겁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왜 더 빨리 끝내지 않으실까요. 강의에서도 이 질문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은 주님의 더디심을 무능이나 무관심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오래 참으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연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할 일도 분명해집니다. 세상이 빨리 무너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정부가 더 정직하고 시장이 사람을 덜 짓밟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속이지 않고, 힘없는 사람의 몫을 지키며, 권력이 한곳에 고이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의 질문을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대신,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 헛되이 썩지 않도록 제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종말을 안다는 것은 마지막 날의 순서를 많이 외우는 일이 아닙니다. 끝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일입니다. 봐도 달라질 것 없어 보이는 세상을 위해 다시 기도하고, 쉽게 포기했던 한 사람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심판의 때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오늘입니다.

소금은 심판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녹아, 한 사람에게 돌아올 시간을 내어 줍니다.

강의 요약

1. 요한계시록 17–18장은 서로 다른 두 타락을 보여 줍니다

2. 절대 권력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3. 제어되지 않는 시장도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4. 건강한 정부와 건강한 시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5. 짐승과 큰 음녀의 동맹은 마침내 배신으로 끝납니다

6. 두 증인을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것은 가능한 해석이지 확정된 답은 아닙니다

7. 두 증인의 핵심 사명은 심판 전에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만든 시간표보다 큽니다

9. 심판이 더딘 시간에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담겨 있습니다

10. 교회는 세상이 덜 썩도록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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