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와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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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모든 열매를 한 사람이 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A국에서 사역할 때 저는 늘 같은 선택 앞에 섰습니다. 제가 직접 하면 빨랐습니다. 기도회를 이끌어도, 조직을 만들어도, 일을 정리해도 결과가 바로 나왔습니다. 현지 청년들에게 맡기면 답답했습니다. 실수도 많고 속도도 느렸습니다. 저는 기다리기보다 제가 해버렸습니다. 그때는 사역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그곳을 떠나자 숨겨졌던 문제가 보였습니다. 제가 만든 일을 이어갈 사람이 충분히 서 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다시 들어가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빨리 만든 성과는 있었지만 오래 남을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보다 그들이 잘 형성되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사역은 내가 있는 동안 빛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이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짧은 인생 안에 대단한 것을 이루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큰 회사, 큰 사역, 눈에 띄는 성과에 끌립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내 삶도 대단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망에 붙잡히면 지금의 나와 가족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퇴근해도 일을 놓지 못하고, 사역을 마친 뒤에도 다음 성과를 생각합니다. 대단한 일을 붙들다가 평범하지만 귀한 오늘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맞섰고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그 정도 사건이면 나라가 한 번에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합의 반응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고, 이세벨은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불이 내린 다음 날 세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도망했고, 나무 아래 주저앉아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 무너짐 속에서 엘리야가 평소 무엇을 짊어지고 있었는지도 드러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나만 남았다”고 말합니. 외롭고 두려웠던 그의 고통은 진짜였습니다. 동시에 ‘나밖에 없다’는 생각은 모든 일을 자기 어깨에 올려놓습니다. 내가 멈추면 하나님의 일도 끝날 것 같고, 내가 보지 못하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보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엘리야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혼자 불을 내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로 이어질 다음 장면을 말씀하시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끝내게 하지 않으셨습니. 엘리야의 한계를 꾸짖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보다 긴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여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을 겪은 뒤 엘리사를 부릅니다. 갈멜산의 승리만 아는 엘리야가 아니라, 무너져 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시간표가 깨진 엘리야가 다음 사람을 세우게 됩니다. 계승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오래 남기시는 방식입니. 한 사람에게 몰렸던 열정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고, 한 세대가 다 보지 못한 일을 다음 세대가 이어갑니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했지만 그 힘으로 자기 이름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먹는 국의 문제를 돌보고, 물에 빠진 도끼를 찾고, 공동체가 머물 자리를 넓히는 일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갈멜산의 불보다 작아 보이는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이런 시간이 다음 역사를 준비했습니다.

한두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작게 보지 마십시오. 모인 숫자가 적어도 한 사람을 깊이 세우는 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지금은 약해 보여도 그 사람이 훗날 어떤 일을 감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기름부음은 자신이 돋보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기 발로 서고, 또 다른 사람을 세우도록 돕는 데 써야 합니다.

환경을 공부할 때 ‘수용 한계’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한 땅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명을 밀어 넣으면 처음에는 풍성해 보여도 곧 땅이 망가집니다. 공동체도 비슷합니다. 사람의 힘과 시간, 관계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무시한 채 계속 확장하면 안에서부터 지칩니다. 당장 잘되는 것과 오래 건강하게 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열정만이 아니라 평안, 리듬, 신뢰, 계승 안에서 오래 자랍니.

열심은 귀합니다. 저도 열심이 많은 사람이고, 지금도 성장을 좋아합니다. 다만 열심이 하나님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열심이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사람을 세우기보다 태울 수 있습니. ‘내가 해야 된다’는 불안이 동력이 되면 나도 타고 주변 사람도 탑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열심에는 하나님이 나 없이도 일하신다는 신뢰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가족과 지내다 보면 하나님의 시간이 더 잘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아직 아주 어릴 때의 귀여움은 그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자라지 않고 계속 그 모습이면 그것도 온전한 기쁨은 아닐 것입니다. 자라기 때문에 지금이 아름답고, 지금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더 귀합니다. 사역이 아무리 중요해도 오늘 가족과 웃고 밥 먹는 시간을 계속 뒤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자꾸 뒤처졌다고 말합니다. 남보다 늦고, 규모가 작고, 눈에 띄는 성과가 없으면 실패한 것처럼 압박합니다. 그 소리에 끌려가면 평안을 잃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맡기신 일을 하고, 지금 만난 사람을 사랑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누리면 됩니다. 바울이 형편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듯이 대단하지 않은 날에도 평안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엘리야의 불도 하나님이 쓰셨고, 엘리사의 조용한 공동체도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보다 훨씬 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시작하고 이어가며 완성하십니다. 모든 열매를 한 사람이 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 안에서 평안하게 걷고,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며, 그 사람이 더 잘하도록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사람과 믿음이 남는다면 그 시간은 헛되지 않습니다.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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