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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때를 통제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람을 기다리는 믿음
마가복음 4장, 로마서 8장, 전도서 3장, 갈라디아서 6장, 고린도전서 3장, 이사야 42장, 데살로니가전서 5장, 디모데후서 2장을 따라가며 기다림이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정리합니다. 생명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고, 우리는 심고 물을 줄 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 기다림은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 사람의 변화와 성장은 강압보다 온유한 기다림 속에서 일어납니다
- 화낸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내가 생명을 살립니다
에세이
기다림은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기다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림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태도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면 우리는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릴 때, 그건 포기해서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 안에 생명이 있고, 때가 차면 열매가 맺힐 것을 믿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주제가 나온 배경도 중요합니다. 바로 앞에서 사랑을 배울 때 고린도전서 13장의 핵심 중 하나가 오래 참음이었습니다. 사랑은 그냥 감정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 기대하고 바라보는 마음으로 오래 참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사랑과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속도를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시간을 존중해야 합니다.
강의 때 빈칸이 있는 표를 나눠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답을 다 채워서 주면 편하긴 하지만,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직접 말씀을 찾고, 요점을 적고, 자기 말로 다시 써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다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다 해주면 빨라 보이지만, 실제 형성은 자기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천천히 소화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생명의 성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 씨가 자라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처럼, 생명은 우리의 스케줄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하고, 빨리 변화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빨리 열매를 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전도서 3장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두 말씀을 같이 놓고 보면 기다림의 핵심이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언제 바뀔지, 언제 자랄지, 언제 열매가 보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른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변했으면 좋겠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고,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고, 제자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사람은 반드시 자라고,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다만 그 속도와 방식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다림은 더 어려워집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할 수 있는데, 매일 부딪히는 가족이나 배우자나 공동체 식구에게는 빨리 바뀌라고 요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인내가 많이 필요합니다. 결혼 생활도, 제자 양육도, 공동체 생활도 기본 바탕에 온유와 기다림이 없으면 계속 긁고 흔드는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 거둡니다. 이 말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때가 있음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내 성격, 내 조급함, 내 스케줄이 하나님의 시간표보다 앞서 나갈 때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해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도 같은 흐름입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심고 물 주는 일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습니다.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해서 아기를 억지로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분유를 주고, 돌보고, 안전하게 해주고,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는 것은 생명의 영역이고, 생명의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예시는 단순하지만 정확합니다. 다온이가 빨리 커서 똥기저귀도 가리고, 이유식도 먹고, 알아서 밥도 먹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분유를 주고, 재우고, 안아주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를 내 마음대로 키워 올리는 능력은 부모에게 없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도 똑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성스럽게 하되, 생명의 성장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사야 42장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약한 사람을 빨리 판단하고, 빨리 버리고, 빨리 결론 내리는 방식으로 대하면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처럼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아야 합니다. 이건 그냥 착한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도 아주 실제적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아야 합니다. 거역하는 자도 온유함으로 훈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문장이 나옵니다. 변화는 기다림 속에서 일어납니다. 성내면 변하기 어렵습니다. 화낸다고 변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기다린다는 말이 방치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권면해야 합니다.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의 중심에 불안과 조급함이 있으면 사람은 눌립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속 긁어보고, 걱정한다고 하면서 계속 뿌리를 흔들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 심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 지점을 잘 보여줍니다. 나무를 잘 기르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으로 나무를 억지로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뿌리가 편안히 펴지게 하고, 흙을 잘 덮어주고, 단단하게 다져준 뒤에는 자꾸 옮겨 심지 않습니다. 걱정된다고 껍질을 긁어보고, 뿌리를 흔들어보고, 여기저기 옮기면 비록 사랑한다고 말해도 사실은 나무를 해치는 것입니다.
곽탁타 이야기의 날카로운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무의 본성을 따라 뿌리가 펴지게 하고, 흙이 안정되게 하고, 심은 뒤에는 자꾸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심한 사람은 껍질을 긁어 생사를 확인하고 뿌리를 흔들어봅니다. 그 순간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해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정치와 교육과 목양과 가정에 다 연결됩니다. 겉으로는 백성을 사랑한다면서 명령을 너무 많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재촉하고, 계속 불러내면 백성은 자기 생업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나무가 자라야 하는데 계속 뿌리를 흔드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은 관심이 없는 리더십이 아니라,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여백을 아는 리더십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도록 공간을 드려야 합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조급함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고 온유함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셨고, 지금도 그렇게 다루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람을 대할 때 약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화로 바꾸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믿으며 심고 물 주는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기다림은 약함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내용 정리
1. 기다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기다림은 기대를 접은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서 있는 태도입니다. 농부가 비를 기다리는 이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씨앗 안에 생명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포기보다 훨씬 적극적인 믿음의 행위입니다.
2. 생명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씨앗이 어떻게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오는지 사람이 다 설명할 수 없듯이, 사람의 성장과 변화도 우리가 조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위기를 만들고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의 내면이 열리고 믿음이 자라는 순간까지 내 손으로 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결국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고백이 기다림의 출발점입니다.
3. 기다림은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내 스케줄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지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만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전도서가 말하듯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십니다. 기다림은 아무 계획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 시간표를 하나님의 시간표 앞에 내려놓는 믿음입니다.
4.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 거둡니다
갈라디아서 6장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선한 일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유혹은 결과가 빨리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이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중단이 아니라 낙심을 이기며 계속 심고, 계속 물 주고, 계속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5. 우리의 역할은 심고 물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사역자와 부모와 리더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라게 하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을 맡아 돌보는 청지기이기 때문에, 충성은 하되 결과를 내 힘으로 장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6. 사람은 강압보다 온유한 기다림 속에서 자랍니다
디모데후서는 주의 종이 다투지 않고 온유하며 참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개와 성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르치고 권면하되 조급함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강압은 행동을 잠깐 바꿀 수는 있어도 마음 깊은 곳의 변화와 성숙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7. 약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사야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약한 생명은 빨리 판단하고 정리할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품고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기다리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는지를 드러냅니다.
8. 화낸다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내면 사람은 더 빨리 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닫히기 쉽습니다. 걱정한다는 이름으로 계속 확인하고,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계속 흔들면 상대는 자라기보다 방어하게 됩니다. 변화는 두려움으로 밀어붙일 때보다 안전한 사랑 안에서 훨씬 깊게 일어납니다.
9. 좋은 환경을 마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나무를 잘 심는 사람은 뿌리가 편안하게 펴지도록 돕고, 흙을 잘 덮고, 단단히 다진 뒤에는 자꾸 건드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고 안전한 관계를 마련해주되, 계속 옮겨 심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생명을 약하게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10.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빌립보서 1장의 고백처럼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십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결국 사람을 내 손으로 완성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불안이 아니라 평안으로 사람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11. 기다림은 방치가 아니라 책임 있는 돌봄입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주고, 격려하고, 붙들어주고, 좋은 토양을 마련하는 일은 계속해야 합니다. 다만 그 모든 돌봄의 중심에 자라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인정이 있어야 돌봄이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12.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큰 온유가 필요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해도 가족, 배우자, 공동체 식구처럼 매일 부딪히는 사람에게는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고, 내 기대대로 움직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래 참음과 온유는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매일 훈련해야 하는 실제 신앙이 됩니다.
13. 불안한 확인은 생명을 해칠 수 있습니다
곽탁타 이야기에서 가장 아픈 장면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껍질을 긁고 뿌리를 흔드는 모습입니다. 잘 자라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이해되지만, 그 불안한 확인이 반복되면 나무의 본성이 상합니다. 사람도 계속 점검받고 몰아붙여지면 자라기보다 숨고, 방어하고, 자기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14. 리더십은 생명이 자랄 여백을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리더십은 명령과 재촉을 많이 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생업과 본성을 회복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능력입니다. 곽탁타 이야기는 백성을 사랑한다면서 너무 자주 부르고 재촉하는 정치가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공동체와 가정과 목양에서도 여백이 있어야 뿌리가 펴지고 생명이 숨을 쉽니다.
15.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랑입니다
기다림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약한 생명을 함부로 꺾지 않으시며, 끝까지 다루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기다림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심고 물 주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곽탁타 이야기 원문
柳宗元, 種樹郭橐駝傳. 기다림과 생명 돌봄의 비유로 강의에서 다룬 원문입니다.
郭橐駝,不知始自何名。病僂,癃然伏行,有類橐駝者,故鄉人號之「駝」。駝聞之曰:「甚善,名我固當。」因舍其名,亦自謂橐駝雲。其鄉曰豐樂鄉,在長安西。駝業種樹,凡長安豪富人爲觀遊及賣果者,皆爭迎取養。視駝所種樹,或移徙,無不活,且碩茂蚤實以蕃。他植者雖窺伺效慕,莫能如也。
有問之,對曰:「橐駝非能使木之壽且孳也,以能順木之天,以致其性焉耳。凡植木之性,其本欲舒,其培欲平,其土欲故,其築欲密。既然已,勿動勿慮,去不復顧。其蒔也若子,其置也若棄,則其天者全而其性得矣。故吾不害其長而已,非有能碩而茂之也;不抑耗其實而已,非有能蚤而蕃之也。他植者則不然,根拳而土易,其培之也,若不過焉則不及。苟有能反是者,則又愛之太恩,憂之太勤,旦視而暮撫,已去而復顧。甚者爪其膚以驗其生枯,搖其本以觀其疏密,而木之性日以離矣。雖曰愛之,其實害之;雖曰憂之,其實讎之,故不我若也。吾又何能爲矣哉?」
問者曰:「以子之道移之官理可乎?」駝曰:「我知種樹而已,理,非吾業也。然吾居鄉,見長人者好煩其令,若甚憐焉,而卒以禍。旦暮吏來而呼曰:『官命促爾耕,勖爾植,督爾獲。蚤繰而緒,蚤織而縷,字而幼孩,遂而雞豚。』鳴鼓而聚之,擊木而召之。吾小人輟飧饔以勞吏,且不得暇,又何以蕃吾生安吾性耶?故病且怠。若是,則與吾業者其亦有類乎?」
問者曰:「嘻,不亦善夫!吾問養樹,得養人術。」傳其事,以爲官戒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