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과 형성

조회수0

에세이

훈련은 형성을 섬겨야 합니다

A국에 있을 때 저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아주 강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과했습니다. 하루에 두세 시간, 때로는 그보다 더 오래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읽으면 사랑도 빨리 많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라 더 날카로워진 저를 보았습니다. 말씀을 붙든다고 했지만, 사실은 성질 급한 제가 저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신약을 여러 번 읽을수록 기준은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까지 다루고, 원수를 사랑하며,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읽을수록 오히려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 앞에서 좌절했다면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열심이 없으면 이런 좌절도 잘 오지 않습니다. 다만 좌절한 사람을 다시 힘으로 몰아붙이면 신앙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신약의 삶은 성령 충만 없이는 감당할 수 없습니. 저도 그렇게 믿었고 지금도 믿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예배나 집회에서 가득 충전한 뒤 일상에서 모두 써버리는 일로만 생각하면 곧 회의가 찾아옵니다. 뜨겁게 기도한 다음에도 다시 넘어지면 ‘내가 받은 은혜는 어디로 갔나’ 싶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고, 또 강한 집회를 찾아야 겨우 살아나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두 살짜리 아이에게 한꺼번에 밥을 엄청나게 먹인다고 일곱 살이 되지는 않습니다. 생명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루에 성경을 서너 시간씩 읽었다고 갑자기 장성한 사람이 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이 먹이는 일이 언제나 잘 돌보는 일은 아닙니다. 조급함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면 좋은 훈련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은 재촉해서 만들어 내는 성과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은 말 몇 가지를 고쳐 쓰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 하고, 예배하지 않으면 다시 예배하고 싶어집니다. 잘 살고 싶다는 갈망 자체가 이미 새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는 흔적입니다.

저는 한동안 자기 부정을 ‘나를 지우는 일’로 이해했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붙들면서 제 존재를 계속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이 우울해졌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지워 버리는 소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짓된 자아는 내려놓지만, 하나님이 새롭게 지으신 참된 자기는 더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의 분노나 욕망, 갑자기 밀려오는 어두운 생각을 내 존재 전부라고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이 나를 누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새롭게 지으신 나의 정체성까지 빼앗지는 못합니다. 잘못된 것을 몰아내는 일과 새 생명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사람은 자신을 문제 그 자체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살리고 계신 속사람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변화는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생명의 성장입니. 예배에서 받은 은혜가 며칠 뒤 희미해진 것처럼 보여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밥을 먹으면 많은 것이 몸 밖으로 나가지만 일부가 영양분으로 남아 몸을 키웁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드린 시간도 그렇게 남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1밀리미터의 성장이 쌓여 어느 날 전과 다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힘은 순간적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영이 자라면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 두 살 아이와 성인의 힘이 다른 것은 그날의 기분 때문이 아니라 몸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삶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매번 무너지던 일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버티고, 전에는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품게 됩니다. 완벽해진 것은 아니지만 싸움의 난이도가 달라집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속사람의 성장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 생명이 잘 자라도록 돕는 일도 필요합니다. 걱정을 붙들고 계속 곱씹거나, 분노를 내버려 두거나, 무엇이든 잘해 보겠다고 힘을 잔뜩 주면 속사람이 눌립니다. 저도 찬양을 인도할 때 아내가 앞에 앉아 있으면 갑자기 잘해야 할 것 같아 힘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 힘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찬양하는 마음을 방해합니다. 힘을 뺀다고 다시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차릴 때마다 내려놓는 연습은 할 수 있습니다. 영을 지키고, 자라게 하고, 살찌우는 것입니.

훈련은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 시간을 정하고, 몸에 밴 습관을 고치며, 순종을 연습해야 합니다. 다만 훈련받은 행동이 곧 사람의 변화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군대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반듯하게 생활하지만 제대했다고 그 모습이 저절로 평생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훈련을 잘 해내면 자랑하고 싶고, 실패하면 자신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행동과 의지만 붙들 때 생기는 한계입니다.

형성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시간 속에서 사람 전체를 빚어 가는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규율도 그 생명을 돕기 위해 사용됩니다. 훈련은 형성을 섬겨야 합니. 훈련 횟수를 채우는 데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사람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놓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시키는 것보다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먹고 쉬며 배워야 하는지를 살피는 일이 먼저일 때도 있습니다.

저처럼 빨리 달리고 싶은 사람은 변화가 더딜 때 쉽게 힘을 줍니다. 사역에서도 사람을 같은 속도로 끌고 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두 살에게 필요한 돌봄과 스무 살에게 필요한 책임은 다릅니다. 양육자는 사람의 열심만 점검할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생명이 눌리지 않고 자라는지 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작은 순종을 귀하게 여기고, 넘어졌을 때 다시 먹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신약에 기록된 삶은 조급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생명은 오늘도 자라고 있습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는 헛되이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작은 은혜가 남고, 작은 순종이 쌓이며, 전에는 넘지 못하던 자리를 조금씩 넘어가게 합니다. 훈련은 형성을 위해 존재합니. 생명을 앞서 끌고 가지 말고 잘 먹이고 보호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강의 요약

© 2026 Johnny Kim. All rights reserved.

본 강해 원고의 저작권은 Johnny Ki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하며, 인용 시 출처와 원문 링크를 함께 표기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