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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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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속도

하나님의 속도

시편 131편의 고요함으로 조급함과 자기 야망을 내려놓는 삶

시편 131편과 마태복음 16장, 23장을 중심으로, 붙잡을수록 잃고 내려놓을수록 얻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 성령의 주권, 하나님의 속도, 건강한 자존감의 회복을 다룹니다.

  • 내려놓을 때 오히려 찾게 됩니다
  •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속도로 자랍니다
  • 자존감은 하나님과의 반복된 교통에서 회복됩니다

에세이

시편 131편은 짧지만 매우 깊은 시편입니다.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이 고백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알고, 자기 야망의 속도를 내려놓는 성숙한 고백입니다.

이 시편을 마태복음 16장 25절과 23장 12절의 역설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살고자 하면 잃고, 주님을 위해 잃으면 찾습니다. 높아지려 하면 낮아지고, 낮아지면 높아집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세상의 공식과 반대로 움직이는 길이 있습니다. 움켜쥐면 사라지고, 내려놓으면 다시 받는 길입니다.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소중한 것을 결국 내놓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정확한 영화 장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다른 방식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만은 못 놓겠다고 붙잡는 것, 이것이 없어지면 나는 끝이라고 느끼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역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붙잡아야 산다고 생각한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오히려 내 영혼이 살아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려놓음은 체념이 아닙니다. 포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통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인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빨리 결론을 내지 않아도, 하나님이 가장 선한 속도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음 흐름은 성령의 주권입니다. 부흥과 회복은 결국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삶의 변화, 회개, 순종, 관계 회복은 사람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공도, 사역의 주인공도, 회복의 주인공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지점에서 속도 문제가 나옵니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합니다.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하고, 빨리 변화가 보여야 하고, 빨리 답이 나와야 마음이 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인공이시라면 속도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원하는 속도로 끌고 가려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중요한 예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길을 빠르게 만들려면 사울을 제거하는 것이 쉬운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빠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되는 속도까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지점에서 다윗은 통과했습니다. 빠른 해결책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속도를 기다리는 일은 지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앞서가서 만든 빠른 결과는 결국 다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느린 길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고, 때가 되었을 때 더 깊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찰을 주기적인 튜닝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앞서가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있는지, 어느 순간 내 야망이 사역의 중심에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계속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도 필요하지만, 리더가 될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는 내 야망을 펼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이 주인공이신 자리입니다. 세상적 성공을 교회 안에서 이루려 하거나, 내 이름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 사용하려 하면 질서가 틀어집니다. 하나님이 많이 참으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이 참으셔야만 굴러가는 공동체보다 하나님이 기쁘게 주인 되시는 건강한 공동체가 훨씬 좋습니다.

시편 131편의 고백은 바로 이 흐름과 연결됩니다.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이것은 비전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크기보다 큰 일을 억지로 붙잡아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만큼을 받고, 하나님이 여시는 때를 기다리는 영혼의 고요함입니다.

후반부에는 건강한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하나님과의 잦고 반복된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내 영혼이 그 사랑에 반복해서 만져질 때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리더는 사람들을 자기에게 의존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좋은 리더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잘 인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리더에게 더 묶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약한 자존감은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보다, 성과와 행동으로만 사랑받았을 때 사람은 자기 존재를 불안해합니다.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고, 뭔가를 해내야 인정받고, 좋은 결과를 내야 가치 있다고 느끼면, 영혼은 계속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다른 것을 취해서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성과, 학벌, 명품, 인정, 사역의 크기, 사람들의 평가가 내 가치의 근거가 됩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면 마음은 계속 불안해집니다. 가진 동안에는 으쓱하지만, 없으면 다시 무너집니다.

사역에서도 이런 약한 자존감은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좋은 야망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려는 쓸데없는 야망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어서 사역하고, 내가 인정받고 싶어서 일하고,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교회를 사용하면, 하나님이 주인공 되셔야 할 자리가 흐트러집니다.

회복된 상태는 시편 131편입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는 것처럼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해지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붙잡아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안에서 쉬는 상태입니다. 그때 사람은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도의 흐름도 중요합니다. 불안한 시대에 우리의 마음이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구합니다. 마음의 토양이 먼저 복에 합당한 토양이 되기를 구합니다. 결과보다 먼저 마음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이 조급함과 불안으로 가득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와도 그것을 건강하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내려놓으라는 말은 우리를 비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려놓음은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기 위한 길입니다. 속도를 내려놓고, 야망을 내려놓고, 자기 증명을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서 자존감을 회복할 때, 우리는 더 평안하고 더 건강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내용 정리

1. 시편 131편은 영혼의 고요함을 보여줍니다

시편 131편은 교만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감당하지 못할 큰 일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비전이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알고 자기 야망의 속도를 내려놓는 성숙한 삶입니다.

2. 하나님 나라에는 잃을 때 찾는 역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면 잃고, 주님을 위해 잃으면 찾는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도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움켜쥐는 방식이 아니라 맡기는 방식이 하나님 나라의 길입니다.

3. 마지막까지 붙잡던 것을 내려놓을 때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영화 장면을 예로 들며, 마지막 남은 것까지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리는 역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것만은 못 놓겠다고 붙잡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 내려놓음은 체념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통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인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선한 때와 방식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내려놓음의 중심입니다.

5. 부흥과 회복의 주인공은 성령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삶이 변화되고, 회개와 순종과 관계 회복이 일어나는 것은 성령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사역자는 이 일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시도록 자신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6. 속도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우리는 빠른 결과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주인공이시라면 속도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 조급함으로 끌고 가려 하면, 겉으로는 빨라 보여도 속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7. 다윗은 빠른 해결책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길을 빠르게 만들려면 사울을 제거하는 선택이 쉬운 길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 자체가 성숙의 통과 지점이 되었습니다.

8. 하나님의 속도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도는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보다 앞서 만든 빠른 결과는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빚으시는 길은 느려 보여도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때가 되면 더 깊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9. 성찰은 하나님께 시선을 다시 맞추는 튜닝입니다

성찰은 내가 너무 앞서가고 있지 않은지, 내 야망이 중심에 들어와 있지 않은지, 하나님께 시선이 맞춰져 있는지 점검하는 일입니다. 성도에게도 필요하지만, 리더와 사역자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훈련입니다.

10. 교회는 내 야망을 펼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공이신 자리입니다. 세상적 성공이나 자기 증명을 교회 안에서 이루려 하면 질서가 흐트러집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공동체입니다.

11. 건강한 자존감은 하나님과의 반복된 교통에서 회복됩니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경험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반복해서 교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할 때 영혼이 만져지고 자존감이 회복됩니다.

12. 좋은 리더는 사람을 하나님께 연결합니다

리더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리더는 각 사람이 하나님과 더 직접적으로 교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람을 자기에게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이 건강한 인도입니다.

13. 존재가 아니라 성과로 사랑받으면 자존감이 약해집니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지 못하고, 공부나 성과나 행동으로만 인정받으면 사람은 자기 존재를 불안해합니다. 그때 사람은 계속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14. 약한 자존감은 자기 증명의 도구를 찾게 합니다

성과, 학벌, 명품, 인정, 사역의 크기 같은 것들이 내 가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기대면 가진 동안에는 높아지는 것 같아도, 없어질 때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15. 자기 증명의 야망은 사역을 흐트러뜨립니다

좋은 야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존감에서 나오는 야망은 나를 증명하려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 야망이 교회와 사역 안으로 들어오면 하나님이 주인공 되셔야 할 자리가 흐트러집니다.

16. 회복된 영혼은 젖 뗀 아이처럼 고요합니다

시편 131편은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영혼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받는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을 붙잡아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17. 마음의 토양이 먼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 기도는 불안한 시대에 마음이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구합니다. 결과가 먼저가 아니라 마음의 토양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복에 합당한 토양이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건강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