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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파라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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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질서

교회와 파라처치

은사와 능력보다 질서와 목양을 먼저 배우는 공동체 감각

교회는 질서와 목양의 공동체이고, 파라처치는 교회를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라 교회를 돕는 기능 조직임을 설명하며, 은사와 리더십이 많을수록 더 겸손과 절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룹니다.

  • 교회는 질서와 목양의 공동체입니다
  • 파라처치는 교회를 대체하지 않고 돕는 기능 조직입니다
  • 은사가 많을수록 더 겸손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에세이

우리는 먼저 “질서를 잡는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이끌 사람은 분위기만 잘 띄우는 사람이 아니라 질서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팔로워의 자리에서는 공동체의 질서를 인정하고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단순히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목회자와 리더를 존중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가까이 사역하다 보면 리더의 약점도 보이고, 부족함도 보이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쉽게 열어 말하고,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분위기를 만들면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존중은 리더가 완벽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질서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필요한 태도입니다.

저는 심각한 권위 도전이 목양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고 봅니다. 이것은 사람을 쉽게 내치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 안의 질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계속 필요하지만, 공동체의 질서를 반복적으로 깨는 태도는 결국 목양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미래의 리더들은 질서를 억압처럼 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는 울타리로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선교단체와 파라처치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선교단체나 기능 중심 사역을 오래 경험한 사람들은 교회 안의 질서와 목양 구조를 낯설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단체에서는 능력, 은사, 결과, 기능이 더 빨리 드러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은사가 있는데 왜 제한하지?”, “리더십이 있는데 왜 마음껏 쓰지 않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능력만으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원리처럼 모든 것은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은사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으로, 질서 안에서 사용되는가입니다. 은사는 교회를 깨는 도구가 아니라 몸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파라처치는 기능 조직입니다. 특정한 목적과 기능을 위해 빠르고 선명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매력도 있고, 때로는 더 화끈하고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능적 선명함 때문에 파라처치가 교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선교단체는 교회 아래에서 교회를 돕는 보조 구조이지, 교회를 대신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저는 어떤 단체 출신 사람들이 자기 단체의 가르침과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교회나 목회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체가 건강해서 생기는 열매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파라처치만 쓰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해 보이는 로컬 교회를 영화롭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 자기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교회가 때로 약해 보이는 이유는 교회의 중심 기능이 목양이기 때문입니다. 목양은 빠른 성과나 강한 기능만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오래 품고, 연약한 사람을 돌보고, 공동체 전체를 몸으로 세워가는 과정은 느리고 복잡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면 약해 보이는 교회도 빛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를 무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사례도 중요한 경고입니다. 한 외국 선교사가 인도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예배 시간에 계속 밖으로 나가 자기 일을 하고, 공동체 예배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 교회의 목회자는 “당신의 사역이 귀한 것은 알지만, 교회에는 교회의 권위가 있으니 존중하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사역이 귀해도 교회 안에서는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단체의 자료나 사역 방식을 교회에 그대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파라처치에서 좋은 자료와 좋은 훈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교회에 가져올 때는 반드시 교회의 색깔로 녹여야 하고, 목회자의 방향과 공동체의 흐름 안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자료도 교회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단체 출신 그룹과 기존 성도 그룹이 갈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회자의 목양보다 자기들이 경험한 단체의 방식과 흐름을 더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사실상 두 개의 리더십과 두 개의 문화가 생깁니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부 분열을 만드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목회자의 목양과 교회의 방향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단체 출신 청년이나 선교단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올 때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단체 사역을 그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곳이다”, “개교회에서는 목회자의 권위와 리더십을 인정해야 한다”, “단체는 교회를 돕는 것이지 교회를 대체하지 않는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런 교육은 예방 접종처럼 공동체를 보호합니다.

중요하게 정리해야 할 것은 교회와 파라처치의 차이입니다. 교회는 목양이며 몸입니다. 파라처치는 기능이며 도구입니다. 교회에서는 은사가 몸을 세우기 위해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파라처치에서는 은사가 사역 확장과 기능 수행을 위해 더 앞에 배치될 수 있습니다. 둘 다 귀하지만, 위치와 목적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은사가 많다는 것은 곧 더 앞에 서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겸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절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은사가 많을수록 공동체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은사 때문에 영향력 경쟁과 분열을 겪었듯, 은사는 질서 아래 있지 않으면 몸을 세우기보다 몸을 찢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은사 순서대로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내 은사가 더 큰데 왜 나를 쓰지 않지?”,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잘하는데 왜 저 사람이 리더지?”라는 생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핵심은 누가 더 잘하느냐만이 아니라 누가 질서 안에 있느냐입니다. 직분과 질서 안에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11장으로 잠시 확장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통해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가고, 이방인의 부요함과 충만함이 말해지는 흐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요함은 단순한 물질 복이 아니라 복음적 부흥과 풍성함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도 이 복음의 큰 흐름 안에서 이해됩니다.

결국 중심은 교회를 사랑하는 감각입니다. 은사도 귀하고, 리더십도 귀하고, 선교단체도 귀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목양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자라가는 자리입니다. 질서를 잡을 줄 아는 사람, 질서 안에 거할 줄 아는 사람, 은사가 많을수록 더 겸손히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웁니다.

내용 정리

1. 미래의 리더는 질서를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를 섬길 사람은 단순히 열심이나 능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를 세우고, 질서 안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공동체가 평안하게 자라도록 도와야 합니다. 팔로워의 자리에서는 그 질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 교회는 질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마음 맞는 사람들의 사적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목회자와 리더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무너지면 비판과 분열이 쉽게 생깁니다. 존중은 리더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질서의 몸이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3. 리더의 약점을 보아도 쉽게 드러내고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이 사역하면 리더의 약점은 반드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동체 안에서 쉽게 말하고 깎아내리면 질서가 깨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분별은 필요하지만, 비판의 문화는 공동체를 세우지 못합니다.

4. 심각한 권위 도전은 목양을 어렵게 만듭니다

목양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질서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반복적으로 권위에 도전하고 공동체 질서를 깨는 태도는 목양 관계 자체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질서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중요한 울타리입니다.

5. 선교단체 경험자는 교회 질서를 새로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파라처치나 선교단체에서는 기능, 성과, 은사, 리더십이 더 빠르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의 느린 목양 구조와 질서가 낯설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6. 고린도전서 14장은 은사보다 질서를 강조합니다

은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이 아닙니다.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으로 사용되는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의 은사 문제를 결국 품위와 질서의 문제로 정리합니다.

7. 리더십과 은사는 때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리더십이 크고 은사가 많으면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것을 무조건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 답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몸을 세우기 위해서는 은사와 리더십도 질서 아래에서 절제되어야 합니다.

8. 파라처치는 기능 조직입니다

파라처치는 특정한 목적과 기능을 위해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사역이 선명하고 빠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능적 장점 때문에 교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9. 파라처치는 교회를 돕는 보조 구조입니다

선교단체와 파라처치는 교회 아래에서 교회를 섬기는 구조입니다. 교회를 대신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 위치를 잊으면 단체가 교회를 판단하고 목회자를 무시하는 교만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10. 하나님은 로컬 교회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교회가 연약하고 느려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중심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기능적으로 강해 보이는 단체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목양 중심의 로컬 교회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11. 교회 안에서는 교회의 사역과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단체 소속이거나 귀한 사역을 하고 있어도,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의 예배와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사역이 귀하다는 이유로 교회 질서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12. 단체의 자료를 교회에 그대로 가져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자료와 훈련이라도 교회에 가져올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의 색깔로 녹이고, 목회자의 방향에 맞추고, 공동체 흐름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이 오히려 질서를 흐릴 수 있습니다.

13. 교회 안에 두 개의 리더십이 생기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단체 출신 그룹이 교회 안에서 자기 단체의 흐름을 더 따르려고 하면 기존 성도들과 분리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목회자의 목양과 교회의 방향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한 몸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14. 교육은 공동체를 지키는 예방 접종입니다

특히 단체 배경을 가진 청년들에게는 교회와 파라처치의 차이를 미리 교육해야 합니다. 미리 가르치면 나중에 생길 오해와 불만과 분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보호합니다.

15. 교회는 몸이고 파라처치는 도구입니다

교회는 목양과 몸의 공동체입니다. 파라처치는 기능과 도구의 성격이 강합니다. 둘 다 귀하지만, 목적과 위치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도구가 몸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16. 은사가 많을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은사가 많다는 것은 더 앞에 서야 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겸손하고 더 절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향력이 클수록 공동체를 세우거나 흔들 수 있는 힘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17. 교회는 은사 순서대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누가 더 잘하느냐만으로 직분과 질서가 정해지는 곳이 아닙니다. 은사가 더 커 보이는 사람이 늘 앞에 서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직분과 질서 안에서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18. 불만보다 질서 안에 있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왜 나를 쓰지 않지?”, “왜 저 사람이 리더지?”라는 생각은 은사 경쟁과 영향력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더 뛰어난가보다 누가 질서 안에서 겸손히 섬기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19. 로마서 11장은 복음적 부요함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통해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가고, 이방인의 부요함과 충만함이 말해지는 흐름은 단순한 물질 복이 아니라 복음의 풍성함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시대의 부흥과 교회의 영광도 이 복음의 흐름 안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20. 질서 안에서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이 교회를 세웁니다

은사, 능력, 리더십, 단체 경험은 모두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질서 밖에서 사용되면 교회를 세우기보다 흔들 수 있습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사람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면서 동시에 질서 안에 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