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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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도에서 청년들과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다. 아래로 물이 빠진 마른 땅이 보였고, 그 위로 좁은 길 하나가 나 있었다. 한 사람이 소를 몰고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소는 왼쪽으로 새지도, 오른쪽으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길을 벗어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가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에게 주신 비전도 그 길에서 이루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비전을 품은 사람은 대개 멀리 보고 빨리 가려 한다. 나도 그렇다. 나는 성장과 확장을 좋아한다. 가능성이 보이면 속도를 내고 싶고, 길이 열리면 더 밀어붙이고 싶다. 그 힘 덕분에 시작한 일도 많다. 그러나 속도가 붙을수록 사람의 형편을 놓치기 쉽다는 것도 배웠다. 빨리 커진 일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달렸는데 사람만 지치고, 일을 벌인 나 자신도 소진될 때가 있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다. 그 말씀은 소극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니, 조급함이나 두려움 때문에 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이다. 한쪽으로 세게 달리는 것이 믿음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방향을 잃은 열심은 목적지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

사역을 처음 맡으면 결과를 내고 싶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그런데 내가 사역을 시작한 때가 겨울일 수도 있다. 겨울에는 아무리 나무를 흔들어도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봄을 재촉한다고 계절이 바뀌지도 않는다. 계절은 사람이 바꿀 수 없다. 그때 억지로 열매를 만들어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맡겨진 땅을 지키고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질 급한 분이 아니다. 한 사람을 빚는 데도, 한 공동체를 세우는 데도 필요한 시간을 아끼지 않으신다.

기다림은 손을 놓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성실하게 하고, 내가 바꿀 수 없는 때는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다. 조급한 사람은 하나님의 몫까지 끌어안는다. 그러다가 열매가 늦으면 자기 능력을 의심하거나 사람을 몰아붙인다. 반대로 때를 믿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게으르지 않다. 씨를 뿌릴 때 뿌리고, 물을 줄 때 물을 준다. 자라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을 세울 때도 같은 분별이 필요하다. 해야 할 책임을 자꾸 미루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만 해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때로는 잘못을 바로 말하고, 책임을 가르치고, 삶을 조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며 사는 사람도 있다. 기도를 조금 못 했다고 하루 종일 자신을 정죄하고, 한 번의 실패를 믿음 전체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더 높은 기준만 들이대면 마음이 망가진다. 겉으로는 버티는 듯해도 속으로 숨거나 이중생활에 빠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말은 “더 하라”가 아니라 “좀 내려놓아도 된다”는 말이다. 성숙에는 시간이 걸리고,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같은 말이 한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짓누를 수 있다. 목회는 정답 하나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밀어 넣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사람을 조여야 하는지, 풀어 주어야 하는지 살피는 일이다.

신학과 사역의 강조점도 마찬가지다. 선교를 강조하면 교회가 세상을 향해 움직인다. 남은 자의 사명을 강조하면 시대 앞에서 깨어 있게 된다. 말씀을 붙들면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성령의 은사를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신다는 기대가 살아난다. 모두 귀한 유산이다.

문제는 하나의 강조점이 신앙의 전부가 될 때 생긴다. 선교의 열심이 섬김과 겸손을 밀어낼 수 있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다른 교회와 성도를 낮춰 보는 우월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 말씀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성령의 역사를 의심하고, 은사를 사모한다는 이유로 말씀의 검증을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좋은 가르침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빛을 귀하게 받되 그 뒤에 생길 그림자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강조점은 벽이 되지 않고, 공동체를 살리는 은사가 된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 과잉 사명감이다. 사명감이 큰 사람일수록 모든 결과를 자기 책임으로 가져오기 쉽다. 선교지의 일이 풀리지 않는 것도 내 기도가 부족해서이고, 가까운 사람이 넘어지는 것도 내가 제대로 돕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나라와 교회와 가족의 형편까지 자기 어깨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짓누르는 가짜 책임일 수 있다.

엘리야도 “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생각을 바로잡으셨다. 엘리야만 남은 것이 아니었고, 엘리야 혼자 모든 일을 끝낼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세워 뒤를 잇게 하셨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을 다 해 먹게 하지 않으신다. 내가 맡은 몫은 분명히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메시아는 아니다. 내가 놓는 순간 하나님 나라가 무너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작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여기서 적당히는 대충 하자는 말이 아니다. 믿음을 식히거나 타협하자는 뜻도 아니다. 때와 사람과 형편에 꼭 맞는 정도를 찾자는 말이다. 관계에서는 가까이 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알고, 리더십에서는 권위를 세워야 할 때와 마음을 열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사역에서는 밀어야 할 일과 기다려야 할 일을 가리고, 신학에서는 내가 붙든 진리 때문에 다른 진리를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적당함에는 미지근함이 없다. 오히려 아주 섬세한 분별이 필요하다.

인도에서 보았던 그 길은 넓지 않았다. 소를 모는 사람도 뛰지 않았다. 그저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한 걸음씩 갔다. 비전은 한 번의 큰 결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중심을 잃지 않고 걷는 사람,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며 오래 순종하는 사람이 마침내 그 길의 끝에 닿는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지금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서두르지 말고 끝까지 걸어가라.

강의 요약

1.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2. 조급함과 극단성은 사람을 소모시킨다

3. 계절은 사람이 바꾸지 못한다

4. 사람에 따라 조이기도 하고 풀어 주기도 해야 한다

5. 좋은 강조점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6. 사명과 가짜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7.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 모든 일을 끝내지 않으신다

8. ‘적당히’는 대충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9. 비전은 중심을 지킬 때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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