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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타임 스터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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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타임 스터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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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예수님과 스가랴서의 여호와의 날
마태복음 2장의 왕권,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 스가랴 14장의 감람산 구원과 스가랴 12장의 회개를 연결해 재림하시는 왕 예수님을 정리합니다.
- 황금·유향·몰약과 예수님의 왕권
-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의 실제성
- 감람산과 이스라엘의 회개
에세이
먼저 뼈대를 복습합니다. 다니엘 8-12장, 요한계시록 6장, 마태복음 24장, 스가랴 14장이 기본 줄기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직접 말씀하신 마지막 시대의 장이고, 스가랴 14장은 그 감람산과 재림의 장면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심 고백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마지막 시대 본문은 어렵고, 해석도 많고,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같은 논쟁도 있지만, 그 모든 논의보다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실제로 다스리시는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속 위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통치하시고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왕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들이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제사장 되심을, 몰약은 죽으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고, 제사장이시며 희생 제물이시고, 동시에 온 세상을 통치하실 왕입니다.
그래서 예언을 너무 쉽게 전부 비유로 돌려버리면 중요한 감각을 놓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대한 예언은 실제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예언도 실제 역사 속에서 아이들이 죽고 부모들이 애통하는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본문을 무리하게 문자화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의 차이도 잠깐 짚습니다. 후천년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이 점점 개선되어 간다고 보는 흐름이고, 전천년설은 예수님 재림 이후 실제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 논쟁 자체가 아닙니다. 새 창조의 방식이 정확히 어떠하든, 천년왕국의 구조를 어떻게 이해하든, 우리가 붙드는 중심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고백입니다.
에스겔 40장 이후의 성전 환상은 이 고백을 더 실제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에스겔 성전은 포로 귀환 이후 지어진 성전과 규모와 세부 묘사가 다릅니다. 남쪽문, 동쪽문, 북쪽문, 성소, 제사장 방까지 매우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성막 때부터 성전과 관련해 매우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 환상을 단순한 비유로만 보기에는 본문이 너무 촘촘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읍의 크기가 약 1,600km 규모로 묘사되고, 높이까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을 전부 비유로만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그런 성읍을 이루실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소한 상상보다 훨씬 크고 구체적으로 자기 약속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스가랴 14장은 왕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이 공격받고, 집이 약탈되고, 성읍의 절반이 사로잡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 전쟁과 포로의 장면으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구체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절망적인 장면 속에서 주님이 친히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때 산이 갈라지고 큰 골짜기가 생깁니다. 마태복음 24장의 감람산 강화, 예수님의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심의 장소가 감람산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서시고, 그 산이 갈라지며, 남은 백성이 도망할 길이 열립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손아귀에서 자기 백성을 빼내시는 구원의 장면입니다.
스가랴는 우시아 시대의 지진도 언급합니다. 아모스 1장 1절에도 우시아 시대 지진이 언급되고, 그 지진은 백성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 도망한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스가랴 14장의 도망은 그런 공포와 긴급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하라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그날은 여호와께서 아시는 독특한 날입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날, 어두워갈 때 빛이 있는 날로 묘사됩니다. 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 동해와 서해로 흐르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 장면은 단지 파괴만이 아니라, 심판 속에서 구원과 생명이 흘러나오는 주님의 날을 보여줍니다.
스가랴 12장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시고,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고 독자를 위해 애통하듯 애통합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예수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회개의 장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의 기본 이야기 흐름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감람산에 서시고, 포로처럼 붙잡힌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고,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찌른 바 된 이를 보고 애통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흐름은 엔드타임 공부에서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입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한 지식 취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도 마음이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언약적으로 사랑하신 백성과 역사, 하나님 나라의 큰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접붙임 받은 사람들이기에,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만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흐름이 오늘의 현실과도 연결됩니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떤 나라도 자동으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나라들도 적그리스도의 침략과 심판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강도와 양상은 그 땅이 얼마나 보존되었는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서 있는지와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심판을 가볍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전쟁 없이, 큰 고통 없이, 나라가 회개하고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고통을 통해서야 악의 실체를 깨닫고 정신을 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앙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구하고, 나라가 덜 무너지도록,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용 정리
1. 마지막 시대 핵심 본문 복습
다니엘 8-12장, 요한계시록 6장, 마태복음 24장, 스가랴 14장을 마지막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본문으로 다시 정리합니다. 다니엘서는 큰 예언의 구조를 보여주고, 요한계시록 6장은 봉인의 재앙과 말들의 흐름을,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직접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를, 스가랴 14장은 여호와의 날과 감람산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은 왕이시다
마태복음 2장의 황금, 유향, 몰약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제사장적 사역, 몰약은 죽으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고, 제사장이시며 희생 제물이시고, 실제로 통치하시는 왕입니다.
3. 예언을 지나치게 비유화하지 않기
구약의 예언은 실제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나신 일, 라마의 통곡이 실제 고통으로 드러난 일처럼, 성경의 예언은 단순한 상징 이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 본문도 무조건 비유로만 처리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실제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4. 논쟁보다 중요한 중심 고백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같은 논의는 신학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후천년설은 예수님 오시기 전 세상이 점점 개선된다고 보고, 전천년설은 재림 이후 실제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그 논쟁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예수님이 다스리시며, 예수님이 왕이라는 고백을 붙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5.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
에스겔 40장 이후의 성전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합니다. 포로 귀환 이후의 성전과도 다르고, 단순한 비유라고 보기에는 너무 촘촘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역시 약 1,600km 규모의 성읍처럼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크기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자기 약속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6. 스가랴 14장의 여호와의 날
스가랴 14장은 열방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읍이 큰 고통을 겪는 장면을 말합니다. 집이 약탈되고, 성읍의 절반이 사로잡히는 심판의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장면 속에서 주님이 친히 싸우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7. 감람산과 피난의 길
주님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때 산이 갈라지고 큰 골짜기가 생깁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남은 백성에게 피난의 길을 여시는 장면입니다. 우시아 시대의 큰 지진처럼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도망하는 이미지가 겹치며,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먼저 빼내어 구원하시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8. 우시아 지진과 뒤돌아보지 않는 도망
스가랴 14장은 우시아 시대의 지진을 언급합니다. 아모스 1장 1절에도 그 지진이 언급되고, 큰 공포 속에 사람들이 도망한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이 도망은 마태복음 24장의 긴급한 피난, 뒤돌아보지 말라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9. 여호와께서 아시는 독특한 날
스가랴 14장은 그날을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여호와께서 아시는 독특한 날로 묘사합니다. 어두워갈 때 빛이 있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 동해와 서해로 흐릅니다. 심판의 날이면서 동시에 구원과 생명이 흘러나오는 날입니다.
10. 이스라엘의 회개와 예수님의 긍휼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스가랴 12장 10절처럼 그들이 찌른 바 된 이를 바라보고 애통하는 장면은, 심판 속에서도 회개와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11. 마지막 시대의 기본 이야기 흐름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감람산에 서시고, 포로처럼 붙잡힌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고,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찌른 바 된 이를 보고 애통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 공부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기본 이야기 흐름입니다.
12. 하나님의 관심에 관심 갖기
하나님이 언약적으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한 성경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역사와 백성, 그리고 마지막 때의 스토리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야 합니다.
13. 나라와 전쟁을 바라보는 기도
마지막 시대의 전쟁과 심판을 한국의 현실과도 연결해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동시에 나라가 너무 무너지지 않도록, 악을 분별하도록,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