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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양육

율법과 양육

양의 상태를 분별해 돌보고, 새 언약 안에서 율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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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요약

양육은 사람의 상태를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먼저 먹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자라야 할 사람에게는 방향과 책임을 주어야 합니다.

  • 사람의 상태를 보고 필요한 만큼 먹이고 세워야 합니다
  •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생명은 복음 안에서 옵니다
  • 새 언약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와 성령이 계십니다

율법과 양육 스터디 가이드

율법과 양육 강의를 더 깊이 붙들기 위한 짧은 묵상 질문입니다.

이 강의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요?
양육은 사람의 상태를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먼저 먹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자라야 할 사람에게는 방향과 책임을 주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어떻게 실제로 반응할 수 있나요?
강의를 천천히 다시 읽고, 마음에 남는 확신 하나를 고른 뒤 이번 주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순종으로 연결해 보세요.

에세이

사역자는 사람마다 다르게 접근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같은 말, 같은 규칙을 모두에게 반복하는 건 목양이 아닙니다. 사역자는 자기가 편한 방식 하나만 고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자리에 맞게 다르게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별이 있습니다. 어린 양에게 필요한 것과 자란 양에게 필요한 것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먼저 먹임과 안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방향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같은 처방을 모두에게 내리면, 둘 다 놓칩니다.

어린 양에게 처음부터 강한 훈련을 들이밀면 오히려 상처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 아직 어리고, 존재가 흔들리고, 사랑받는 감각이 약한 사람에게 필요한 첫 언어는 다릅니다. “잘하고 있다”, “괜찮다”,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다음 단계의 훈련도 건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숙한 양에게 계속 먹이기만 하면 성장이 멈춥니다. 자란 양에게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움직이고, 함께 사역하고, 맡겨진 일을 감당해 보아야 더 자랍니다. 사역자는 모두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단계와 필요에 맞게 유연하게 사랑하고 세우는 일입니다.

이 원리는 교회를 볼 때도 필요합니다. 어떤 교회는 회복의 역할을 맡습니다. 어떤 교회는 기초 양육을 맡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숙한 동역자를 세우는 역할을 맡습니다. 한 교회가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감당하지 못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서로 다른 역할이 있습니다.

이 분별은 율법을 다룰 때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율법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하느냐입니다. 이건 돈 얘기만이 아닙니다. 안식을 지키는 방식, 훈련의 강도, 순종을 요구하는 속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같은 기준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이대면, 어떤 사람은 눌리고 어떤 사람은 자라지 못합니다.

십일조도 이 구조 안에서 봐야 합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성전과 레위 지파와 이스라엘의 종교 국가 구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자발적 헌금과 청지기 정신이 더 중심으로 옵니다. 이건 십일조를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십일조는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강하게 강조하지 않으면, 평생 십일조를 결코 하지 않을 사람도 많습니다. 문제는 십일조 자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직성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십일조가 신앙의 기본 훈련이 됩니다. 아직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 그 단계를 지났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식 안에서 더 넓게 드리고 나누며 삽니다. 그 사람에게 십일조라는 숫자를 계속 들이대면, 오히려 그 사람이 이미 서 있는 자리를 못 보는 것입니다.

규칙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는 십일조 방식이 아니라 다르게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의 자리와 맥락을 보기 전에 반사적으로 “왜요? 십일조를 안 한다고요?”부터 나옵니다. 자기는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정작 유연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유연하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규칙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규칙부터 보는 반응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결국 율법과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복음의 구조와 사람의 단계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어린 양에게는 사랑과 먹임을 말해야 합니다. 자란 양에게는 책임과 방향을 말해야 합니다. 성숙한 동역자에게는 더 깊은 사명과 자유를 말해야 합니다. 같은 말을 모두에게 반복하는 사역자는, 그 다음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 다음 이야기를 못 가르칩니다. 사역자는 그 복음 안에서 사람을 분별하고, 먹이고, 치고, 세워야 합니다.

강의 요약

1. 목회자는 자신이 원하는 양만 고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사람은 내가 기대한 성숙한 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일 수도 있고, 상처 많은 초기 신앙자일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는 예수님이 맡기시는 사람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2. 요한복음 21장은 양의 상태를 구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양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과 자란 양, 먹이는 것과 인도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3. 어린 양에게는 먼저 사랑과 먹임이 필요합니다

어린 양은 신앙 초기자, 상처 많은 사람, 의존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강한 훈련과 책임을 요구하면 오히려 상처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먼저 안정감을 주고, 먹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4. 훈련보다 사랑이 먼저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잘한다, 괜찮다,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꼭 필요합니다. 존재가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훈련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 안에서 안정된 뒤에야 다음 단계의 책임과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성숙한 양에게는 책임과 방향이 필요합니다

자란 양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책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계속 먹이기만 하고 아무 책임도 주지 않으면 오히려 성장이 막힐 수 있습니다. 성숙한 양에게는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을 맡기고, 함께 사역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6. 사람의 단계에 맞게 양육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훈련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명이 필요합니다. 일괄적인 접근은 목회적 분별이 부족하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7. 교회마다 맡은 역할도 다를 수 있습니다

회복형 교회, 양육 성장형 교회, 성숙 동역형 교회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모든 역할을 다 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눈에 부족해 보인다고 교회를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8.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언약 구조와 신약의 언약 구조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모든 율법을 그대로 완벽히 지키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9. 제사 제도는 예수님의 단번 제사로 종료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 다시 동물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능욕하는 일이 됩니다. 제사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조적으로 끝났습니다.

10. 성전의 중심도 그리스도와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구약의 중심은 성전이었지만, 새 언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하나님 임재의 중심은 특정 건물 하나에만 갇히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안에서 드러납니다.

11. 의의 기준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구약의 종교 국가 구조 안에서는 율법 준수가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의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외적 규범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역사입니다.

12. 율법은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것도 극단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주며,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유익을 줍니다.

13. 율법은 거울이지만 치료제는 아닙니다

거울은 더러운 부분을 보여줄 수 있지만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지만, 사람을 씻고 살리는 힘은 복음과 성령과 새 생명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유익과 한계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14. 십일조도 새 언약의 구조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성전, 레위 지파, 이스라엘의 종교 국가 구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자발적 헌금과 청지기 정신이 더 중심입니다. 이것은 십일조를 폐기하자는 말도, 십일조를 가르치는 교회를 비판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15. 사람의 단계에 따라 헌금의 언어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십일조가 기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숙한 사람은 이미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의식 안에서 더 넓게 드리고 나누고 헌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순한 규칙보다 더 깊은 청지기와 사명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16. 사역자는 여러 단계의 사람을 섬길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단계의 사람을 맡기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태아 같은 양, 어린 양, 자란 양, 성숙한 동역자 모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한 가지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17. 율법의 유익과 복음의 생명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는 유익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복음 안에 있고, 변화는 성령 안에서 일어납니다. 목회자는 이 구조를 알고 사람을 먹이고, 치고,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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