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Johnny KimMessages & Lectures
JK

오디오 강의

율법과 양육

Voice

VoiceBenefit of Law and Gospel lecture video

율법과 양육

율법과 양육

양의 상태를 분별해 돌보고, 새 언약 안에서 율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

요한복음 21장의 어린 양과 양, 먹이라와 치라의 구분에서 출발해, 목회 대상의 단계별 양육과 모세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넘어온 복음의 구조, 율법의 유익과 한계를 정리합니다.

  • 어린 양에게는 먼저 사랑과 먹임이 필요합니다
  • 새 언약의 중심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입니다
  • 율법은 거울이지만 생명은 복음 안에 있습니다

에세이

처음에는 목회와 양육의 대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나중에 목회를 하거나 사람을 맡게 되면, 내가 원하는 종류의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맡고 싶은 사람은 성숙한 양일 수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맡기시는 사람은 어린 양일 수도 있고, 상처 많은 초기 신앙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을 고르는 분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점입니다. 목회자는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만 돌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맡기시는 사람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상태에 맞게 먹이고 돌보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의 흐름을 떠올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이라,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미묘한 구분이 있습니다. 모든 양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과 자란 양, 먹이는 것과 인도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어린 양은 갓 태어난 양입니다. 신앙 초기자일 수 있고, 상처가 많고, 의존적이며, 자기 존재가 흔들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강한 훈련과 책임을 들이밀면 오히려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 단계의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제 실제 경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역자로 훈련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 정도 그 관점으로 접근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상처를 받고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드러머가 되라고 박자와 태도를 고쳐주려는 의도였지만, 그 사람의 단계는 훈련을 받을 단계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단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에게는 우쭈쭈도 필요합니다. 이 표현이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목회적 감각입니다. 존재가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먼저 잘한다, 괜찮다,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해야 그 다음 단계의 훈련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숙한 양은 다르게 대해야 합니다. 성인 양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책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책임이 있어야 더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계속 먹이기만 하고 아무 책임도 주지 않으면 성장이 막힐 수 있습니다. 자란 양에게는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을 맡기고, 함께 사역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여기서 목회자의 분별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과 먹임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훈련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의 단계와 필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회 유형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회복형 교회는 상처 많고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습니다. 양육 성장형 교회는 믿음의 기초와 원리 설명, 안정과 훈련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성숙 동역형 교회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 그리스도의 몸이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어떤 교회는 회복의 역할을 맡고, 어떤 교회는 양육의 역할을 맡고, 어떤 교회는 성숙한 동역자를 세우는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내 눈에 부족해 보이는 교회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복음의 구조로 넘어가야 합니다.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언약 구조와 신약 시대의 언약 구조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은, 이제 우리가 율법을 전부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율법의 목적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가리키던 것, 제사 제도가 바라보던 것, 성전과 제사장 제도가 예표하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율법은 폐기된 부분도 있고, 성취되어 더 이상 이전 방식으로 반복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예는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의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다시 동물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능욕하는 일이 됩니다. 제사는 예수님 안에서 구조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중심은 성전이었지만, 새 언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이제 하나님 임재의 중심은 특정 건물 하나에만 갇히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된 공동체 안에서 드러납니다.

율법의 기능도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많은 규범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종교 국가와 성전 체계 안에서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외적 규범을 지키는 것이 의의 기준이 아닙니다. 의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규범을 더 많이 붙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율법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도 극단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주고,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거울입니다. 더러운 부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이 사람을 씻기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지만, 죄를 씻고 사람을 살리는 힘은 복음과 성령과 새 생명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유익은 분명하지만, 율법 조문 자체가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 문제도 이 구조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성전, 레위 지파, 이스라엘의 종교 국가 구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자발적 헌금과 청지기 정신이 더 중심입니다. 이것은 십일조가 아무 의미 없다는 말도 아니고, 십일조를 가르치는 교회를 비판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단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십일조라는 기본 규범이 신앙의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숙한 사람은 이미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의식 안에서 더 넓게 드리고, 나누고, 헌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단순히 “십일조 해야지”라고만 말하면 그 사람의 단계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완전히 헌신된 CEO들의 모임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들은 자기 인생과 재정과 기업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이 깊고, 이미 십분의 일 이상의 삶을 드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초 신앙자에게 하는 방식으로만 말하면 목회적 언어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핵심은 유연한 분별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동시에 사람의 단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양에게는 사랑과 먹임을, 자란 양에게는 책임과 방향을, 성숙한 동역자에게는 더 깊은 사명과 자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맡기실지는 우리가 고를 수 없습니다. 태아 같은 양을 맡기실 수도 있고, 어린 양을 맡기실 수도 있고, 성숙한 양을 맡기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역자는 한 가지 방식만 준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단계의 사람을 만나도 그에 맞게 섬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결국 율법의 유익과 복음의 핵심은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는 유익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살리고, 성령은 사람을 변화시키며, 새 언약은 우리를 믿음과 내적 변화의 길로 부릅니다. 목회자는 이 복음의 구조 안에서 사람을 단계에 맞게 먹이고, 치고, 세워야 합니다.

내용 정리

1. 목회자는 자신이 원하는 양만 고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사람은 내가 기대한 성숙한 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일 수도 있고, 상처 많은 초기 신앙자일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는 예수님이 맡기시는 사람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2. 어린 양에게는 먼저 사랑과 먹임이 필요합니다

어린 양은 신앙 초기자, 상처 많은 사람, 의존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처음부터 강한 훈련과 책임을 요구하면 오히려 상처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먼저 존재를 사랑해주고, 안정감을 주고, 먹여야 합니다.

3. 우쭈쭈도 목회적으로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칭찬처럼 보여도 어떤 사람에게는 잘한다, 괜찮다, 사랑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꼭 필요합니다. 존재가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훈련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4. 성숙한 양에게는 책임과 방향이 필요합니다

자란 양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책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계속 먹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을 맡기고, 함께 사역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5. 사람의 단계에 맞게 양육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훈련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명이 필요합니다. 일괄적인 접근은 목회적 분별이 부족하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6. 교회마다 맡은 역할이 다를 수 있습니다

회복형 교회, 양육 성장형 교회, 성숙 동역형 교회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모든 역할을 다 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7.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언약 구조와 신약의 언약 구조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모든 율법을 그대로 완벽히 지키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8. 제사 제도는 예수님의 단번 제사로 종료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 다시 동물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능욕하는 일이 됩니다. 제사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조적으로 끝났습니다.

9. 성전의 중심도 그리스도와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구약의 중심은 성전이었지만, 새 언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성전입니다.

10. 의의 기준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구약의 종교 국가 구조 안에서는 율법 준수가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의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외적 규범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역사입니다.

11. 율법은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것도 극단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주며,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12. 율법은 거울이지만 치료제는 아닙니다

거울은 더러운 부분을 보여줄 수 있지만 씻어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지만, 사람을 씻고 살리는 힘은 복음과 성령과 새 생명 안에 있습니다.

13. 십일조도 새 언약의 구조 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성전, 레위 지파, 이스라엘의 종교 국가 구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자발적 헌금과 청지기 정신이 더 중심입니다. 이것은 십일조를 폐기하자는 말도, 십일조를 가르치는 교회를 비판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14. 성숙한 사람에게는 더 넓은 헌신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십일조가 기본 훈련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성숙한 사람은 이미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의식 안에서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순한 규칙보다 더 깊은 청지기와 사명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15. 사역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을 다룰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단계의 사람을 맡기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태아 같은 양, 어린 양, 자란 양, 성숙한 동역자 모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역자는 한 가지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16. 율법의 유익과 복음의 생명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율법은 죄를 보여주는 유익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복음 안에 있고, 변화는 성령 안에서 일어납니다. 목회자는 이 구조를 알고 사람을 먹이고, 치고, 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