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지식
에세이
사랑하면 연구합니다
사랑하면 연구합니다. 저는 이 말을 조금 세게 하는 편입니다. 상대를 잘 모르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모르는 채로는 오래 잘해 주기 어렵습니다. 정말 사랑하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에 마음이 닫히는지, 언제 혼자 있어야 하는지 자꾸 보게 됩니다. 더 잘 섬기고 싶어서 묻고, 찾아보고, 공부하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생물들의 이름을 붙입니다.창세기 2:19아담이 각 생물을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무렇게나 부른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어떤 존재인지 살피는 일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다스림도 이런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짓밟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지배가 아니라, 사랑으로 관찰하고 알맞게 돌보는 책임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지 못하면 선한 마음으로도 엉뚱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 풍성해지기를빌립보서 1: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도 부부가 지식을 따라 함께 살아야베드로전서 3: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귀히 여기라 한다고 권했습니다. 지식이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분석하고 분류한다고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은 배우기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진심이라는 사실만 믿고 상대를 공부하지 않으면, 제 진심이 상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끼리만 지낼 때는 이 사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고 웃는 대목도 비슷한 사람과 있으면 편합니다. 교회와 일터와 가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는 굳이 가까워지지 않았을 사람도 공동체 안에서는 매주 얼굴을 마주합니다. 청년이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기 생각은 더 선명해집니다. 그러니 연합이 어려운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성인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로마서 12:4-5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은 생각보다 많은 수고가 듭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남도 자기와 같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투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잘해 주고 싶을 때조차 제가 받고 싶은 방식부터 꺼냅니다. 저는 말로 인정해 주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이거나, 제가 실제로 몸을 움직여 돕는 일이었습니다. 말로 백 번 사랑한다고 하는 것보다 아침 한 끼를 챙기고 귀찮은 일을 맡는 편이 더 잘 들리는 날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여기서 꽤 현실적이 됩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신체적 접촉을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라고 부릅니다. 관계를 이해하는 데 꽤 쓸 만한 기본 어휘입니다. 다만 표 하나로 사람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순서가 다르고, 같은 사람도 형편과 시기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항목을 외워 상대에게 딱지를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가’를 계속 묻는 일입니다.
저는 갈등이 생기면 빨리 풀고 싶어 하는 편입니다. 마음이 상해 보이면 곧바로 ‘왜 화났어?’라고 묻고, 이야기를 다 꺼내야 안심이 됩니다. 그것이 돌보는 일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은 달랐습니다. 감정을 바로 건드리면 더 힘들어했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야 마음이 정리됐습니다. 저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이 그 사람에게는 압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장 풀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묻고 싶은 말을 삼키고, 상대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반대로 상대도 제가 대화를 통해 안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어느 한쪽 방식만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한다면 서로의 회복 속도를 함께 배워야 합니다.
갈등을 푸는 방식도 다릅니다. 불편하면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계를 지키려고 늘 맞춰 주는 사람,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사람, 두 사람의 필요를 함께 놓고 오래 조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많이 맞춰 주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착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계속 쌓아 두다가 어느 날 사람을 끊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상대는 제가 무엇을 참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것도 성숙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불편한 것을 모욕적으로 던지지 않고, ‘저는 이 말이 힘듭니다’, ‘저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맞춰 주는 일과 나를 지우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주기만 하다가 텅 비면 오래 줄 수 없습니다. 내 필요를 말하되 강요하지 않고, 상대의 필요를 듣되 제 마음도 숨기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협력은 이렇게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그래도 관계를 오래 살리는 쪽은 대개 이 수고를 지나갑니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말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 표현과 회복 속도가 다른 것은 틀린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욕하고 위협하고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통제하는 행동까지 성격 차이라고 덮을 수는 없습니다. 다름을 품으라는 말이 안전과 존엄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해로운 행동에는 분명히 멈추라고 말하고,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믿을 만한 사람과 전문적인 도움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 감정형과 이성형으로 나누면 처음에는 이해가 쉬워 보입니다. 책과 유형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보다 유형을 더 믿기 시작하면 다시 그 사람을 놓칩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말하며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서 정리합니다. 같은 사람도 오늘과 내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유형을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금 이 사람을 다시 보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도 차이를 없애서 하나가 되는 곳은 아닙니다. 생각과 성격과 표현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면서도, 세상에서 받은 피로를 서로에게 다시 쏟아 놓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일터에서 다른 사람 때문에 지친 사람이 교회에 와서는 조금 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왜 저 사람은 나 같지 않지?’라는 질문을 ‘나는 저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지?’로 바꾸어야 합니다. 연합은 생각을 하나로 찍어내는 일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서로를 부지런히 배우는 일입니다.
오늘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을 다시 보았으면 합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받고 싶은 방식만 건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조용히 말하고, 상대의 말도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저도 가까운 사람부터 다시 공부하려 합니다. 말로 잘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실제로 필요한 수고를 택하고, 제가 제일 못하는 기다림부터 다시 해보겠습니다.
강의 요약
1. 사랑은 관찰에서 시작합니다
2. 사랑에는 지식과 총명이 필요합니다
3.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4. 투사는 내 방식을 상대에게 덮어씌웁니다
5. 사랑의 언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6. 좋은 뜻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7. 회복의 속도와 방식도 다릅니다
8. 맞춰 주기만 하면 관계가 지칩니다
9. 내 필요도 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10. 협력은 상대와 나를 함께 존중합니다
11. 다름은 해로운 행동의 면허가 아닙니다
12. 연합은 서로를 부지런히 배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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