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와 들을 귀 강의
NEW

자기 객관화와 들을 귀

조회수0

에세이

장점이 많아질 때에도 들을 수 있도록

누군가 제 부족한 점을 말해 주면 마음에서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것은 감사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이 상황을 다 아나?’ ‘나도 이유가 있었는데.’ 속으로 답을 준비합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명할 문장을 만들고, 저를 인정해 주는 말은 오래 기억하면서 불편한 말은 빨리 잊고 싶어 합니다. 저는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대화할 때도 비슷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차례를 기다립니다. 저도 겪은 일이 있고, 더 좋은 사례가 있으며, 알려 주고 싶은 답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말끝에 남은 망설임이나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고민을 놓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용히 듣는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자기 객관화는 자신을 나쁘게 보는 일이 아닙니다. 강점과 약점을 함께 아는 능력입니다. 약점만 들여다보며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면 자신감을 잃습니다. 반대로 강점만 보며 ‘내 방식이 늘 옳다’고 믿으면 교만해집니다. 제게 잘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고, 그 강점 옆에 어떤 사각지대가 생기는지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일을 빠르게 시작하고 구조를 만들며 앞으로 밀고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아무도 시작하지 않을 때 첫발을 내딛게 하고, 복잡한 일을 정리해 움직이게 합니다. 하지만 제가 속도를 내는 동안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답답하게 여기거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속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추진력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이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한 가지 색이 선명하면 그 반대편은 약할 수 있습니다. 감미로운 발라드를 잘 부르는 사람이 처음부터 거친 록의 힘까지 자연스럽게 내기는 어렵습니다. 강하게 치고 나가는 사람은 세밀함을 놓칠 수 있고, 섬세한 사람은 결단을 오래 미룰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힘을 알고, 낯선 쪽을 조금씩 연습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볼 때도 강점과 약점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옳다고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실망스러운 부분을 발견했다고 그 사람이 이룬 모든 수고를 지울 이유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었다가 단점 하나 때문에 전부 부정하는 태도는 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여도 뿌리가 비슷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와 일터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좋은 점이 있고, 분명히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좋다고 꾸미는 일은 충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약점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뒤에서 험담하는 것도 성숙한 태도는 아닙니다. 저는 ‘한 손에는 객관화, 다른 손에는 섬김’이라는 말을 붙들고 싶습니다. 정확히 보고, 배울 것은 배우며, 맡겨진 자리에서는 정직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객관화와 비판은 다릅니다. 객관화는 사실을 알아 가는 일이고, 비판은 그 사실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찾아 제가 더 나아 보이려 한다면 객관화라는 말을 빌린 교만일 수 있습니다. 약점을 보면서도 그 사람에게 배울 수 있고,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필요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가 더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모두 받아들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모욕적인 말, 사람을 조종하려는 말, 사실과 다른 비난까지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견딜 필요는 없습니다. 말한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을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방식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용까지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살펴야 합니다. 거친 말 속에도 사실이 조금 들어 있을 수 있고, 조심스럽게 건넨 염려를 핍박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책임이 커질수록 이 구분은 더 중요해집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쉽게 조언하지만, 자리가 높아지고 성과가 쌓이면 사람들은 말을 아끼기 시작합니다. 늘 칭찬만 듣게 되는 순간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제 말이 곧 기준이 되고, 제 해석에 질문하는 사람을 불편한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공동체 전체도 듣는 귀를 잃습니다.

그래서 리더에게는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묻고,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위로만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제가 놓친 부분을 짚어 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 관계는 이름뿐인 멘토가 아니라 실제로 제 결정과 태도를 말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합니다. 혼자 가장 높은 자리에 서도록 자신을 설계하면, 그 자리에서는 제 얼굴을 비춰 줄 거울을 찾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의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뚜렷한 은사와 담대함은 귀한 선물입니다. 영적인 일을 기대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새로운 길을 여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은사가 클수록 말씀과 성숙, 겸손과 섬김 아래에 더 단단히 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체험과 해석도 말씀보다 위에 놓일 수 없고, 한 지도자가 모든 판단을 혼자 소유해서도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는 동안에도 작은 모임을 이어 가고, 익숙한 건물 밖으로 나가며, 새로운 매체를 직접 배운 사역의 끈기에서는 배울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영향력이 커질 때 영적 권위가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모이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장점을 인정하면 위험을 말할 수 없고, 위험을 발견하면 수고까지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를 함께 볼 때 더 많이 배웁니다.

서로 다른 신앙 전통을 볼 때도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공동체는 영적인 활력과 기대가 크고, 어떤 공동체는 말씀과 제자도의 훈련이 단단합니다. 어느 한쪽을 통째로 자랑하거나 조롱하면 배움이 멈춥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의 장점을 감사하면서도 놓치고 있는 부분을 다른 공동체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빠른 찬양과 느린 찬양이 모두 예배에 필요하듯, 밝은 소망과 십자가를 지는 헌신도 함께 자라야 합니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사람은 피드백을 들은 뒤 행동을 조금이라도 바꿉니다. ‘좋은 말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듣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모든 조언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 확인하고, 제게 필요한 부분을 골라 연습해야 합니다. 듣는 귀는 판단을 포기하는 귀가 아니라,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듣는 귀입니다.

저는 장점이 많아지는 때를 꿈꿉니다. 더 잘 가르치고, 더 넓게 섬기며, 맡은 일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잘될수록 제 말만 크게 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질문이 핍박처럼 들리고, 조언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소리로만 들린다면 성장은 이미 위험한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잘하고 있어서 계속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보지 못해서 보강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을 듣는 동안 바로 설명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 보겠습니다. 아픈 말이 있다면 말한 방식과 내용도 나누어 살피겠습니다.

하나님께 장점이 많아지는 시기에도 들을 귀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제 강점 때문에 생기는 약점을 볼 용기, 저를 사랑해서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겸손, 정확히 보면서도 사람과 공동체를 끝까지 섬길 마음을 구합니다. 오래 성장하는 사람은 혼자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 듣고 배우며 고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강의 요약

1. 자기 객관화는 강점과 약점을 함께 아는 능력입니다

2. 듣는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의 경험과 지혜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3. 강점이 선명할수록 그 힘이 만드는 사각지대도 살펴야 합니다

4. 한 손에는 객관화를, 다른 손에는 섬김을 붙들어야 합니다

5. 불편한 피드백은 말한 방식과 내용의 타당성을 나누어 살펴야 합니다

6. 책임과 영향력이 커질수록 솔직하게 조언할 사람과 견제 구조가 필요합니다

7. 은사와 영적 활력은 말씀과 성숙과 겸손 아래에서 건강하게 쓰입니다

8. 오래 성장하는 사람은 계속 듣고 배우며 행동을 고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 2026 Johnny Kim. All rights reserved.

본 강해 원고의 저작권은 Johnny Ki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하며, 인용 시 출처와 원문 링크를 함께 표기해 주세요.